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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건강관리계열

[몬스터짐]미스터 경기 출신 미스터 코리아 양상훈 교수 인터뷰
20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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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반재민 기자] 경기도 보디빌더들의 축제 제51회 미스터&미즈 경기선발대회가 오는 4월 24일 경기도 양주시의 경기도섬유종합지원센터 대강당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몬스터짐은 미스터경기에 참가하는 보디빌더들을 만나 준비상황과 각오, 운동방법 등 선수들의 모든 것을 독자들께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시간에는 유일한 미스터 경기 출신 미스터 코리아 그랑프리 양상훈 교수를 찾아갔다. 양상훈 교수는 1995년 처음으로 출전한 미스터 경기 –90kg 급에서 체급 1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98년 미스터 경기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2004년 미스터 코리아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현재까지 유일한 미스터 경기 출신 미스터 코리아 그랑프리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 도하 아시안게임을 거쳐 2007년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자신과 같은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언제나 연구하는 양상훈 교수를 서울 강서구의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만나보았다.

간단한 운동으로도 몸관리를 할 수 있다

선수생활을 은퇴하신지 약 10년 정도 되셨는데 최근의 근황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2007년에 선수생활을 은퇴했으니 거의 10년이 다되었다. 현재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회사에 강연도 나가면서 바쁘게 보내고 있다.

전임교수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임교수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선수를 은퇴하고 바로 임용이 된 것은 아니고 2013년도에 임용돼서 현재는 학부장이 되었다.

현재 지도하시는 학과가 스포츠건강관리학부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가르치시는지 궁금합니다
- 스포츠 전문 트레이너를 양성하는 학과다. 다른 체육과와 다른 점은 운동뿐만 아니라 영양학, 운동생리학과 같은 이론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수업 할 때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트레이너과도 있고 재활과도 있고 종합격투기, G.X과 등 여러 학과가 있는데 학생들을 가르칠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회원들을 지도할 때 트레이너가 되는 본인의 몸을 먼저 만들고 회원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기말마다 보디빌딩 대회를 개최해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수업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역시 제자들이 커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것들로 보람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몸이 시간이 가면서 좋아지는 것이 보일 때, 교육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일반인들이 운동을 할 때 가져야 할 마음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각기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 목적의식을 어디에 가져야 하는지가 첫번째고 제일 중요한 것은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것이 재미가 없고 꾸준히 하기 쉽지 않은 운동이다. 이것을 밥을 먹듯이 꾸준히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인들은 운동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습니다. 직장인들을 위한 추천 운동루틴이나 식단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맨몸 스쿼트와 런지, 크런치, 플랭크, 레그 레이즈 처럼 기본 5가지 동작을 하면 좋지만, 그 중에 스쿼트와 런지를 추천하고 싶다. 이 운동들을 20회씩 3번만 꾸준히 하면 한 달 정도 되면 몸이 확실히 좋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식단조절 부분에서는 염분을 좀 제거하고 단백질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겠지만, 운동만 열심히 한다면 식단 부분에서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호주에서 갈고 닦은 그랑프리의 비법

 
미스터 경기에 처음 출전한 시기는 언제였나요?
- 1995년에 출전했다. 첫 출전을 라이트 헤비급으로 참가했는데 바로 체급 1위를 했다. 당시에는 예상을 못했고 관장님도 경험을 쌓으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1위를 하고 근육상도 차지해서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체계적인 운동프로그램이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운동루틴을 가져가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 지금처럼 닭가슴살이라는 것도 없었고 보충제라는 개념도 부족했다. 때문에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중량으로 운동하는 것을 선택했다. 고중량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와 같은 기본 운동에 파워리프팅을 위주로 하면서 몸을 키워나갔다. 분할훈련은 딱히 하지 않았고 월요일은 가슴, 수요일은 등, 금요일은 하체 이런 방식으로 주 3회 운동을 했다.

식이요법도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주로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고 또 특별하게 드신 음식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체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방이 많이 끼지 않는 체질이라 식단관리하기는 편했지만 당시에는 닭가슴살이 비싼데다 인식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참치캔이나 돼지 목살 같은 것을 먹으면서 관리했다

 
단백질 섭취 방법은 어땠나요? 보충제 같은 경우에는 지금의 보충제와 기능이나 종류에서 큰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단백질은 콩가루에서 추출한 대두단백을 베이스로 한 보충제를 섭취했다. 한통에 약 6천원 정도였는데 품질은 확실히 떨어졌다. 지금은 그때에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

 
98년에 미스터경기 그랑프리를 차지했습니다.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 98년에는 첫 해보다 준비를 더 철저하게 했다. 그 당시에 호주에 9개월 동안 트레이닝도 다녀오고 코치 아카데미에 있으면서 철저하게 몸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

 
호주와 한국의 훈련환경 차이는 어땠었나요?
- 호주를 갔을 때 운동기구나 보충제 부문에서 비교가 안됐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고기값도 매우 쌌기 때문에 호주에 있으면서 더 좋은 몸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르는데 미스터 경기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 지금 선수들은 선수층도 좋아졌고 외국에 나가도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손색없는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기까지 우리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시안게임에서 본 강경원 선수

2002년에 헤비급 2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위가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을 따기도 했던 최재덕 선수였는데 어떤 선수였습니까?
- 포징이 아주 좋고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줄 아는 선수였다. 중요한 길목마다 이 선수와 맞붙었다. 좋은 라이벌 이었다고 생각한다.

2004년 미스터 코리아 그랑프리를 차지하셨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사실 그 당시에도 막강한 경쟁자가 있었다. 부산의 장병호 선수였는데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우승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회에서도 예선전에서 그 선수에 밀렸었다. 하지만, 하룻동안 단수를 하면서 수분 층을 빼는데 주력했고 다음날 본선에서 역전을 해버렸다.(웃음)

그때 얻었던 교훈은 무엇이었나요?
-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역전을 했지만, 나도 방심을 했다면, 역전을 당했었을 지도 모른다. 후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은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 코리아 이후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 미스터 코리아 그랑프리를 차지한 이후 6개월 동안은 정말 하늘에 붕 뜬 기분이었다. 이듬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까지 뽑힐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자부심이 느껴졌었다.


국가대표 생활은 어떠셨나요?
- 그 당시에 다른 국가대표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보디빌딩 대표팀도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당시에 구리에 합숙소가 있었고 주중에는 훈련하고 주말에는 외출하고 오는 루틴이었다. 마치 군대에 다시 입대한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평소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고 혹독하게 훈련했다.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는 강경원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강경원 선수는 어떤 선수였는지 궁금합니다.
- 강경원 선수는 나보다 2살 어리다. 하지만, 나이에 맞지않게 성숙했다. 몸관리도 나만큼 철저하게 했다. 합숙기간이나 도하에 있던 기간이나 자신에게 철저했다. 그렇게 철저했기 때문에 어려운 조건에서도 아시안게임 메달을 목에 건 것 같다.

도하는 사막기후에다가 음식과 물, 운동 환경까지 한국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대회 내내 어떻게 컨디션 조절을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 음식조절이 정말로 힘들었다. 도하는 음식이 빨리 상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서 나온다. 때문에 그 음식들은 먹을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여러나라 음식이 뷔페처럼 나왔기 때문에 절이지 않는 음식을 골라서 조금씩 먹을 수 있었다. 정작 중동 선수들은 먹지 않고 자신들이 싸온 것들을 먹었다.(웃음)

 
보디빌딩 이외의 여러가지 에피소드

배우 차승원 씨를 직접 지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95년 분당의 월드헬스라는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로 있었다. 그 당시에 차승원 씨가 회원이었던 것 같다. 당시 차승원 씨가 모델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헬스장에 내가 경기에 출전한 사진이 크게 걸린 것을 본 것 같다. 모델 촬영이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라 나와 똑같은 몸을 만들어 달라 부탁했고, 이것이 연이 되어서 트레이닝을 가르쳐줬다. PT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조언을 해준 정도였다. 2007년 선수생활을 그만둔 이후에는 연락이 끊겼다. 몇 년후에 한번 만났는데 차승원 씨가 몰라봤다.(웃음)


대조영에도 출연하셨는데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당시 분당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때 무술감독님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 무술 감독님이 나를 소개시켜주셔서 출연하게 되었다. 단역이었지만, 10회 정도 출연했고 더 출연할 수도 있었는데 선수생활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10회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맞다 생각해서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배우를 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어려워서 포기하고 학교로 왔다.(웃음)

선수 생활을 하면서 지켰던 철칙 같은 것이 있나요?
- 운동에서는 무조건 고중량을 원칙으로 트레이닝을 가져갔다. 그리고 식습관에서는 철저한 식단루틴을 유지하는 것을 나의 철칙으로 삼았다. 트레이닝과 식습관 중에서는 식습관을 더 크게 비중을 두었다.

선수로 뛸 당시에 롤 모델인 선수는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서지오 올리바를 정말 존경했다. 이외에 리치 뉴스티션의 사장이었던 리치 가스파리라든지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지금까지 양상훈 선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을 알고 싶습니다
-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성남에서 나를 선수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성남시 보디빌딩협회장이셨던 김재호 회장님이 먼저 생각난다. 직접적으로 키워주신 것은 아니지만 선수로서의 동기를 주셨고, 현 대한보디빌딩협회 심사위원장이신 이석인 선생님에게도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현재 경기도보디빌딩협회, 전국생활체육보디빌딩협회 이사로 재직 중입니다. 앞으로 어떤 행정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 아직 이사가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이사가 되고 싶다. 또한 선수권익을 중시하는 이사가 되고픈 소망도 있다.

양상훈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내가 기르고 있는 제자들이 보디빌딩에 더욱 많은 흥미를 가지고, 더 나아가 제자들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만드는 것이 큰 목표다.

마지막으로 이번 미스터&미즈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내가 그랑프리를 차지한 이후로 미스터 경기에서 미스터 코리아가 아직까진 나오지 않았다.(웃음) 앞으로 후배들이 열심히 몸을 만들어서 미스터 경기 출신의 미스터 코리아, 세계대회 입상자가 꼭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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