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원(33)은 인디 가수다. 음악적으로 인정받는 뮤지션이 되기 위해 지금도 공부 중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걸으며 교수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그는 지난 2009년 유명 인디 밴드 '내 귀에 도청장치'에 가입하며 인디 밴드로서 공식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골드멤버'의 리더로서 활동하며 인디밴드의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그만큼 음악 자체가 수준이 있고 실험적이다. 자신을 인디록의 전달자로 표현한 이주원. 하지만 그는 현재 전달자가 아닌 창조자라고 말할 정도로 인디 록 음악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인물이다.
[스포츠Q 글 박영웅기자· 사진 최대성기자] 이주원 교수는 최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교수로서 재직하면서 음악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동시에 인디밴드 골드멤버의 리더로서 여러 가지 음악적 활동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하루에 일반적으로 자는 시간은 3시간이다. 웬만한 보통사람은 힘겨워서 지쳐 떨어져 나갈 법 하다. 그러나 이주원은 하고 있고 행복하다고 한다. 그의 행복 스토리를 제대로 들어봤다.
◆ '엄친아' 이주원 인디밴드의 길을 걷다
이주원은 소위 말하는 엄친아다. 어릴 적부터 교수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엘리트 중의 엘리트 였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공부하고는 인연이 없었다.
"제가 잠실중학교를 다닐 때였어요. 당시 저는 기타가 너무 치고 싶어 통기타부를 들었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당시 반에는 현재 그룹 너츠의 멤버 김우경이 있었고 다른 부에는 가수 이소은이 있었어요. 이들은 당시부터 유명한 친구들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저는 이들과 친해졌고 음악에 급속도로 빠져들었죠. 하지만 공부를 원하신 부모님들은 당연히 좋아하실 리 없었어요."
결국 중학교 시절부터 음악에 빠진 이주원은 인디밴드의 매력을 알게 되며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멀쩡한 일반 가수도 아닌 인디 밴드. 부모님들이 반대 의사를 보인 것은 당연했다.
"대학에 입학했던 당시 인터넷에는 음악인들이 접속하는 유명 사이트 '뮬'이라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온라인으로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났고. 이게 계기가 돼서 당시 인디 밴드 중에 가장 유명했던 내 귀에 도청장치에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됐죠. 저는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는 기회를 맞았죠. 이후 지금까지 인디 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가 됐어요."
◆ 군 제대 후 골드멤버 리더 그리고 교수의 길을 걷다
군 제대 후 이주원은 인기 밴드 내 귀에 도청장치에 합류할 수는 없었다. 당시 다른 멤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만든 그룹이 현재의 골드멤버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수이신 아버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고 강의를 함께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교수로서 자질을 만들어 나갔다.
"제대 후 내 귀의 도청장치는 합류할 수 없었죠, 자연히 새로운 길을 모색했고 새 밴드를 결성했어요. 골드멤버였죠. 이어서 저는 아버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하며 음악에 대한 공부를 더욱 깊게 했고 교수가 돼야 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어요. 이 당시가 저에게 있어서는 정말 많은 노력과 열정을 제 인생에 쏟아 부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 계속 내음악을 하자.
이처럼 이주원은 무조건 내 음악을 해야 성공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디계 후배들에게 큰 조언을 남기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음악을 유지'하는 것이다.
"무조건 내 색깔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가로서 자질이 없는 거예요. 어떤 주변의 말에 휩쓸리면 내 음악을 할 수 없고 스스로 무너지는 길입니다. 나만의 길을 유지하면 인디계에서 만큼은 부와 명예를 추구 할 수 있어요. 후배 여러분 명심하세요."
마지막으로 이주원은 현재 재직 중인 본교에 대한 고마음을 표시했다. 본인의 질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데 학교의 도움이 크기 때문이다.
"학교 덕분에 제가 좋은 음악을 하는 것 같아요. 항상 고맙습니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넘어 음악가 이주원을 키워 가니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