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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무용계열

<칼럼>호서 예술을 말하다 - 성경희 교수
2019.05.29
조회수4432


 

소금꽃이나 안개꽃이라고 했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면/ 아이의 숨결로 피어나는 안개꽃/ 늘 바다를 돋보이게 하는 나침반 되어/ 눈 내리는 부둣가의 추억을 불러오고/ 질풍노도를 잠재운다/ 허허로움을 달래는 너른 가슴/ 둘 아닌 하나로/ 기다림에 익숙한 아이와 나대지 않는 어른이 춤을 춘다/ 외딴 항구의 그늘진 곳/ 크림에서 자주 빛깔로 모습을 바꾼다/ 아직, 그곳 천년의 고독을 잘 견디는 소금꽃 몇 송이 피어있다.
(문화 평론가 장석용의 시)

내강외유 그녀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문화 평론가 장석용의 글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녀는 크림색 안개꽃 같은 고요함과 새벽의 호수 같은 잔잔함이 느껴지지만 단지 하나의 색깔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불꽃같은 열정과 강인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과 함께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이야기로 시작해 끝없이 깊이 있는 대화로 이어져 한참을 대화해도 지루하지 않은 매력을 보여준다.
몇 해 전 교수님의 여행기 한번 싣고 싶다는 요청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언 2년여 만에 드디어 소개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성경희 교수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을 지켜보지 않고는 불가능 하였기에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준비해준 듯하다.
글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3년간 매해 준비해오던 공연에서 최고작품상을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특히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체력적인 고통과 부담감으로 마지막 무대가 될 것 같다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병은 죽지 않는다 했던가? 멋지게 그녀의 살아있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매년 함께하던 그 무대에서의 값진 결실은 마치 나의 수상만큼이나 대리기쁨(?)을 안겨주었다. 
이번 ‘호서예술을 말하다’는 그 어떤 유려한 소개보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진솔한 무용가 성경희를 느껴보기를 희망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그녀... 무용가 성경희


 

성장과정

성경희(成京姬, Sung Kyunghee)는 무오년 겨울, 추진력 있는 사업가 아버지 성은기와 예술을 존중하는 어머니 오지연 사이에 남동생이 있는 두 딸의 둘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무난히 어울리면서도 자기중심을 찾는 그녀는 기름기를 걷어낸 채식주의자 같다. 그녀는 타이티의 여름 같은 청춘시대를 거쳐 자작나무가 있는 명상의 숲 속에서 내공의 자기 수련시대를 맞이한 듯하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더불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는 유년시절부터 그녀의 독립심 배양에 힘을 쏟았고, 자식의 예술적 호기심이나 관심분야에 많은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예의범절이나 원칙 면에서는 굉장히 엄격했다. 안양 삼성초등학교 무용반에서 무용을 했고, 4학년에 접어들면서 서울 대명초등학교로 전학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무용학원에서 정식으로 춤을 배웠다. 성덕여중을 마치고, 명일여고에서 입시공부와 무용반 활동, 무용학원에서 대학 무용학과 진학을 준비했다. 춤...그녀의 길



성경희는 한국무용을 배우다가 현대무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결기(決氣)가 스승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활동적인 성향으로 중학교 교내 발표회에서 친구들과 협동작업 하는 것을 즐겨했고, 명일여고에 진학해서 입시 준비와 청소년연맹 활동, 탈춤・사물놀이 등을 배우면서 우리가락 우리 춤에도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춤의 갈래를 떠나 우리 춤의 사위와 호흡은 필수적으로 알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무용단 주역 출신의 이화숙 선생으로부터 우리 춤을 처음 배웠고, 그 분은 경희에게 발레와 현대무용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후,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선생의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에 출연하고 선교무용단 활동에 이르기까지 성경희의 삶과 춤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 안신희 선생의 도움과 안무의 끈을 놓지 않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주는 SDP 예술감독 홍선미 선생도 성경희와 더불어 같이 가는 춤 길의 은사이다. 성경희는 한선숙 교수의 지도로 상명대에서 현대무용 학사・무용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시절 무릎부상의 긴 치료기간 동안 책・미술・음악 등 인접 예술을 접하면서 무용의 영역을 넓히며 알아가는 호사를 누렸다. 성균관대 예술대학원 무용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기 까지 정의숙 교수의 지도로 본격적으로 무용이론을 공부했다. 인내의 학습 과정과 경험은 오늘날 대학 강의나 무용단 등에서 그녀는 푸른 말의 기운으로 우정의 힘을 갖는 원동력이 되었다.


 

음악과 영화에 대한 사랑... 안무가로서의 삶...그리고 BTS


음악과 영화에 대한 친화적 성향은 그녀의 안무적 상상력을 배양하는 온실 역할을 한다. 성경희는 자신이 하고 싶거나 자신을 알아가며 이루고 싶은 목표에 집중 하는 편이다. 그녀는 일반적인 무용가들의 작업과 조금 다른 ‘합창안무’에 특화되어 있다. 합창안무는 합창단이 합창 할 때 구성・대형・움직임을 가미하는 작업으로써 요즈음 합창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데 무용과 음악을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즐기면서 작업을 하는 행복한 일이다.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2001)에서 시작된 성경희의 안무 작업은 지금까지 다양한 기관으로 연결되어 음악과 함께 융합하는 안무자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녀는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에서 10년 넘게 안무를 하고 있으며,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 과천시립여성 합창단을 거쳐 현재 마포문화재단 ‘꿈의 합창단’에서 안무 감독을 하며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그녀는 남성 팝페라 그룹 ‘유엔젤 보이스’에서 10년간 안무 감독, 합창올림픽 2연패로 유명한 ‘하모나이즈’의 초빙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성경희는 여러 장르를 섭렵하면서 춤이 공간과 에너지, 음악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듯 춤과 음악은 공존하며 다양한 빛깔의 멜로디로 채색하면 움직임은 더욱 입체적이 됨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녀는 Best One보다 소중한 Only One이 되도록 노력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삶을 훈련 중이다. 성경희는 2012년 현대극 페스티벌에서 난해한 부조리극의 대표인 장 주네의 <엄중한 감시>를 현대무용으로 안무하고 출연하면서 개안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발소리>, 외젠 이오네스코의 <의자>를 계속 발표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지금까지도 구성과 동선까지 기억해내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 브루노 뒤몽 감독의 <까미유 끌로델>(2013)을 좋아한다. 내용을 떠나 프랑스 배우들의 명연기와 아우라에 짙은 감성을 느끼는 것 같다. 주로 음악을 찾아서 듣는 편인 그녀는 어떤 장르건 한번 듣고 좋아하면 즐기면서 듣는다. 국악부터 힙합, 해비메틀, 케이팝까지 영역을 정하지 않고 음악을 사랑하며 최근엔 BTS음악에 푹 빠져 있다.




다양한 활동... 춤으로 쓴 편지 음악의 안무로의 연결은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의 <그림자와 달>,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SDP)의 <나들이 그리고 물>, 국제현대무용제에(MODAFE)에서의 에서 발견된다.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2001) 안무 스타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고, 디미트리스와 앨빈 에일리의 공연도 자신을 일깨우는 거울이 되었다.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의 작품들과 데시마 미술관의 건축도 공간예술의 신비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춤으로 쓴 편지」의 저자인 성경희는 현대 무용가이자 교육자이다. 그녀는 학생들과 호흡하면서 가르치고 꿈을 키워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현실과 꿈 사이의 균형추가 되는 멘토 역할과 합창단 안무가로서 공간과 음악, 움직임을 결합한 독창적 안무를 지속하고자 한다. 이번 오월 그녀의 고독에 관한  연구인 이 공연되어졌고 드디어 3년 만에 결실을 이루었다. 최우수 작품상... 그녀에게 그것은 단순히 상의 의미를 떠나 도전에 대한 위로이며 앞으로 활동에 대한 용기이기도 하다. 또 다시 그녀의 도약을 기다리고 기대해 본다. 품격 있는 삶을 위해 겸허하게 절제의 삶을 추구하는 그녀는 미래의 한류스타의 모습을 보인다.
(글로벌 이코노미 기사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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