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교육부 학점은행제 평가인정 교육기관

실용무용계열

<칼럼>호서 예술을 말하다-최유리 교수 편
2017.12.11
조회수3465

 
춤을 사랑하는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평범치 않은 생각과 사연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들로 하나씩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중 오늘 소개할 칼럼의 주인공도 누구보다도 치기와 반항으로 방황하던 어린 시절을 보내온 소녀였을 것이며, 이 모든 시간들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지탱해 주고 성장시킨 원동력은 바로 춤이었을 것이다.
큰 눈에 하얀 피부, 여리여리한 몸매의 필자를 처음 만났을 때 조용하고 참하다는 인상마저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루함과 격식, 이해할 수 없는 것과 타협하고 잘못된 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싫어했고 그러한 그녀의 자존감과 고집이 춤에 대한 열정을 만들어 내었던 것 같다.
춤을 추며 느꼈던 마음들은 춤에 소재가 되고 리듬이 되고 열정이 되어 가장 그녀다운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 글 또한 그녀만의 어투로 담담히 소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한다.

‘거짓이 아닌 나를 완전히 표현하며 춤을 출 때 그리고 관객들이 공감해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을 느꼈었다. 춤추는 사람들이라면 살면서 꼭 한번은 느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장 그녀다운 표현법인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칼럼은 학생들에게는 채찍과 당근을 함께 주는 지혜로움을 가진 친구 같은 교수로 , 펑키한 그녀의 삶을 춤으로 표현하며 재즈를 넘어서 코레오의 영역까지 공부하는 만학도이자 안무가 최유리 교수 편이다.

열정의 또 다른 이름... 아름다운 그녀


▲ 최유리 (서울호서실용전문학교 실용무용예술계열 교수)
현 JYP 엔터테인먼트 트레이너
현 TUNE DANCE COMPANY 수석안무가 및 수석강사


최유리 입니다!

올해 35세인 댄서이자 안무가 최유리 입니다.
지금부터 제 인생이야기와 춤을 추고 사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들 춤 따라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은 그렇듯이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듀스, HOT, 디바 등 댄스 가수들 음악방송을 비디오에 녹화하고 테이프 가 늘어날 때 까지 춤을 보고 외우고 따라 하고 또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같이 췄던 것이 계기가 되서 지금 까지 춤을 추지 않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머니의 부재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고 친할머니가 오셔서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엄하게 키웠던 걸로 기억 합니다. 엄마 없다는 소릴 듣게 하고 싶지 않으셔서 더 무섭게 키우셨던 거 같습니다. 성적도 그렇고 집에 들어가는 통금 시간도 있었고 조금만 잘 못해도 엄청 무섭게 혼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가 제가 춤을 좋아하는 것을 반대를 많이 하셨고, 여느 부모의 바람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춤의 시작-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이 더 좋아졌던 거 같습니다. 그때 당시에 엄청 큰 카세트를 아침마다 학교에 들고 갔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한테 춤을 가르쳐 주고 같이 연습했던 게 너무 좋았습니다.
어떤 날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제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춤 연습을 하는 걸 아시고는 숙제를 주셨습니다. 그때 당시 한 학년에 16반 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반을 모두 돌면서 순회공연을 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친구들에게 춤을 추는 아이로 각인 되었던 거 같습니다.
학교 행사 때마다 춤을 추게 되었고 학교에서 많이 인정해주시고 믿어 주셔서 지금까지 춤을 추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시절 사고도 많이 치고 성적도 떨어지고 아버지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춤추는 것을 아버지가 많이 반대 하셔서 더 많이 반항하고 방황도 했던 거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렵 매일 아버지와 전쟁을 치루었고 춤추는 걸 반대하시는 것을 아셨던 담임 선생님께서 저 몰래 아버지를 구민회관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관객석에 아버지가 앉아계셨습니다. 눈이 마주쳤는데 더 신나게 췄던 거 같습니다.
그날 저녁에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인정해주셨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선생님들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보니까 더 많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정말 시끄러운 중학교를 보냈지만 제일 많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가수준비와 백업댄서 활동 –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꾸준히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여고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그 학교에 춤을 추는 동아리가 없었습니다.
회장이었던 친구가 어느 날 반으로 찾아와서 댄스 동아리를 만들고 싶은데 좀 맡아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 들였고 학교 내에서 오디션을 보고 댄서들을 뽑고 연습하고 대회도 나가서 상도 타고 엄청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고등학교에서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고 2때 학교 선배 한 분이 찾아와서 가수 오디션을 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냥 재미삼아 친구랑 보러 갔는데 오디션에 붙어서 그때부터 합숙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오디션 보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짐 싸들고 합숙소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아버지가 저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운동화 연습복 등을 사주시면 엄청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회사가 힘들어지면서 팀이 데뷔도 전에 해체 되었습니다.
1년 만에 집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때 제가 맛 본 인생 첫 번째 시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3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고 친구들은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저의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감히 대학 갈 생각을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합숙할 때 춤을 배웠던 팀의 한 언니에게 연락이 왔고 댄서를 해 볼 생각이 있는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가수 ‘디바’의 백업 댄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춤의 인생이 시작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 그리고 춤-

성인이 된 후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었고 외동딸이었지만 다른 식구들이 있어서 아버지께 용돈 달라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틈나는 대로 떡볶이 집 같은 곳 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댄서 생활을 하다 보니 돈벌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백업댄서를 그만두고 커피숍, 햄버거 가게, 피씨방, 레스토랑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친했던 친구가 대학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전혀 진학에 뜻이 없었던 제가 좋아하는 춤을 추거나 돈을 벌고 살려면 대학을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3살 나이에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춤을 좋아했지만 순수무용을 하고 싶지는 않고 중학교 때 연극부 했던 경험이 있어 춤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1학년 1학기 딱 한번 등록금 내주시고 그 후로 3년 반 동안 제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대출금이 작년에 끝났고 10년 만에 대출금을 다 갚게 되었습니다.
2학년 다니고 2년 동안은 휴학을 했습니다. 쉬는 동안 수 댄스라는 곳에 들어가서 전문반 수료를 했습니다. 학원비와 대출금을 내야해서 아침 10시부터 학원가서 수업을 듣고 밤 10시에 학원에서 나오면 호프집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습니다.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라 생각해서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전문반 수료 후에 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강사생활을 하면서 다시 학교로 들어가서 졸업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저를 키워주시던 할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그 때 두 번째 시련이 왔던 거 같습니다. 저한테는 엄마와도 같은 분이셨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살면서 댄서 생활을 한지 어느 덧 18년이 되었습니다. 좋은 선생님들과 선배들을 만나 수많은 무대에 올라가게 됐고 대부분 전문인 수료했던 수 댄스에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인연들로 튠 댄스 컴퍼니라는 곳에서 10년 넘게 같이 춤 춘 동료들과 함께 안무가와 댄서로 활동 중입니다.
또 어쩌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겨 실용무용 입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

운 좋게 제자들이 진학이 잘 되어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1년에 평균 6~7명 정도 6년 동안 혼자 입시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서 함께 피치스 라는 댄스팀으로 방송활동, 공연, 프로모션 영상촬영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로 펑크째즈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춤을 추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교수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일이 들어오면 어찌해야 하나요?”

많은 친구들이 겪고 있는 고민입니다. 저는 제가 한창 배울 때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춤을 췄어도 선생님들이 불러 주시면 손해를 조금 보고서라도 일을 찾아 갔었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계속 기회가 생기니까요. 주저하지 말고 기회가 온다면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18년 춤추면서 제일 잘했다 생각한 건 주변에 좋은 동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옆에서 같이 춤 출 동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 옆에는 모두 10년 이상 같이 춤 춘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일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고 같이 춤추면서 이겨 낼 수 있는 동료들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슬럼프 이겨내는 방법!
굳이 이겨내려고 발버둥 안쳐도 될 거 같습니다. 그냥 자기 자신을 다그치지 말고 그때는 내버려 두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거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춤 못 춘다고 또는 춤 출 때 틀렸다고 뭐라 하지 않는데 본인이 본인에게 가장 냉혹하고 인색한 거 같습니다.
그냥 감기 몸살 오듯이 예술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씩 오는 거니까 그때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한번쯤은 내버려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인거 같습니다.



-미래 그리고 나-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 하다 생각하고 배움을 갈망 합니다.
35세가 된 지금도 제 안무 제 춤에 단 한 번도 만족 한 적이 없습니다. 만족 할 때 이 직업 을 그만둬야 한다 생각 합니다. 여전히 트레이닝 받고 또 수업을 하고 안무를 짜서 공연을 올리고 이런 일을 반복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 춤이란 그냥 어렸을 때부터 하고 놀았던 얼음땡과 같은 놀이 입니다.
가끔 실증 난적은 있지만 그만 두어야 한다거나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또 추고 있고, 춤 춤 때 가장 즐거운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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