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향과 속도를 즐기는 리더 나경식의 비보잉 이야기 Ⅱ

▲ 나경식(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실용무용예술계열부장)
대한민국 최초 스트릿 댄스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 비주얼쇼크
-2001 독일 베틀 오브 더 이어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2001년도 배틀 오브 더 이어에 비주얼쇼크라는 프로젝트팀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최초 출전을 알리었다. 이 대회를 통해 퍼포먼스 베스트 쇼를 수상하였으며, 이 후 2002년 익스프레이션이 배틀 1위를 차지하는 등 2010년까지 단연 세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활약하면서 대한민국의 비보잉이 새로운 한류문화로 급부상하기 시작하였다.

배틀 오브 더 이어 2001 비주얼 쇼크 퍼포먼스
http://blog.naver.com/akmvshiphop/100071219968

한국 비보잉의 스타일1
한국 비보잉의 독특한 문화는 바로 결속력이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트레이닝과 연습 역시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지며 이런 노력들은 팀원들 간에 소속감을 더욱 두텁게 만들어 주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어 이는 곧 대회의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당시에 보통 메이저급의 대회들은 팀 배틀의 성향으로 이루어지는데 팀원들 간에 팀워크가 가장 주력을 이루는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그 중에서 단연 최고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학교를 다니면서 혹은 졸업을 하고 나서 모두가 모이는 연습실을 마련하여 매일같이 빠지지 않고 혹독한 트레이닝에 시간을 투자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흐름으로 퍼포먼스는 일본의 스트릿 댄스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루틴과 퍼포
먼스의 구성 및 의상 등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퍼포먼스에서 나오는 특유의 팀워크를 보여주는 섬세함이 바로 루틴에서 나오게 되는데 루틴의 구성을 배틀의 전세에 기울이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그대로 적용하여 이는 2000년에
대한민국 비보잉 문화의 상당한 파급력을 전 세계에 노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서 우승의 결과는 팀워크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처럼 매일같이 모여서 연습하거나 교류할 수 없는 다른 나라와 달리 환경적인 요인이 그 당시 상당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박자와 프리스타일이 다양하게 구성으로 이루어지고 각 개개인의 루틴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루틴에서의 기술이야말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한국 비보잉의 특유한 스타일이었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나라가 대한민국의 비보잉 루틴스타일을 비슷하게 보여주는 예가 많아지면서 메이저급 대회에 루틴제한이 겨나게 되고 각 개인에 맞춘 개인기 위주의 결과가 강세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술에서 박자에 맞춘 섬세한 스타일무브와 파워무브가 다양하게 합쳐진 무브가 탄생하였고 파워무브가 강세였던 대한민국 비보잉 스타일에 새로운 스타일을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한민국 미디어에서는 여러 대한민국 스트릿 댄서들이 국내에 문화콘텐츠로 활기를 넣어줄 뿐만 아니라 교육 쪽에도 진출하여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나라에 진출하여 워크숍 초청, 해외의 공연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현지 아티스트들과 가수, 그리고 세계 속에 한국댄서의 위상을 떨쳤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한국 스트릿 댄스 비보잉의 우승소식, 기업들의 후원과 광고, 공연섭외 1순위 등을 알리었고, 이는 한 설문조사를 통해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나중에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의 순위로 비보이를 꼽기도 하였다.
https://youtu.be/KvkmbWJ5j4A
참고영상- 비보이 전쟁 그날

영화나 뮤지컬, ,댄스컬, 국악분야까지 산업전반에 점차 영역을 넓혀가며 대한민국의 비보잉은 모두 지하연습실에서 최신시설의 연습실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형태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한없이 제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