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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무용계열

<칼럼>호서 예술을 말하다-나경식 교수 1편
2017.09.01
조회수25930

 
비보이 EYE, 서울 호서예전 실용무용계열의 수장 , 문화칼럼니스트이자 문화기자. 나경식 교수가 가지고 있는 역할과 이름들이다.

평범치 않은 이력과 부상으로 격은 순탄치 못했던 비보이로서의 아픔 속에서도 이 수많은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나경식 교수가 이번 칼럼의 주인공이다.
2014년 당시 첫 인상은 한 학교의 학부장으로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경식 교수만의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꼈던 것은 남다른 원칙과 변화에 대처하는 유연함이 있는 그에 삶의 철학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향과 속도는 그를 바라보는 필자의 키워드이다.

나경식 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방향과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며 이끌어 가는 스트릿 장르의 리더이다.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라고 말하는 지도자는 많지만 그 누구보다도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확고한 방향을 제시하고 제대로 속도를 즐기게 해주는 나경식 교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한 페이지에 담기에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또한 진지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비보이 나경식이 말하는 비보이 이야기, 문화 콘텐츠로서의 춤과 사회적 인식,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방향과 속도를 즐기는 리더 나경식의 비보잉 이야기 Ⅰ



▲나경식(서울호서실용전문학교 실용무용예술계열부장)
 

한국의 비보잉은 어디서 왔는가.


이례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가 아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그 분야로 최고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아무런 지원과 인식, 그리고 이렇다 할 수 있는 환경 없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단 기간에 알린 문화가 있다. 그 문화가 바로 스트릿댄스 비보잉이다.


이제는 하나의 유행을 넘어 문화가 되었으며 전 세계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만큼
이안에는 수많은 스토리와 기반이 형성되어있다. 비보잉이 한국에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왜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으며 또한 한 순간에 알려질 만큼 파급력이 있었을까?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놓고 시대적인 예를 근거로 들자면 바로 아날로그 시대가 접어들고 디지털문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보급되고 발전해왔던 미디어의 흐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 전반에 걸쳐 브레이크댄스라는 명칭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당시 미디어의 영향이 컸던 시대인 만큼 방송프로그램과 댄스비디오를 통해 소개되면서 70-80년대에 클럽에서 유행했던 디스코의 음악에서 소울과 펑크 형태의 음악으로 거슬러 오르면서 한국의 새로운 힙합 음악이 알려지게 되면서부터였다. 90년대 댄스&힙합가수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으로 발전되게 되었는데, 춤도 음악과 함께 변화하면서 브레이크댄스의 동작들은 대중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문화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작을 음악에 맞춰 외우고 따라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쉽게 따라 하기가 어렵고 배우기도 어려운 브레이크댄스를 하는 비보이의 정체성은 문화콘텐츠산업전반에 매우 중요한 존재였을 뿐 아니라, 문화산업에 있어 보고 즐기기만 하는 한때의 유행이 아닌 오랜 기간 터득하고 익히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문화의 질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밀레니엄 시대의 시작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한국에서 빠르게 보급되면서부터 춤에 정보가 영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댄서들과의 교류가 급증하면서 한국의 스트릿댄스 시장이 커졌다.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 세계로 나아가다.


국내 최초의 99힙합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스트릿잼(2000년) 비보이 유닛(2001년) 그리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대회를 출전할 수 있는 2001년 보티코리아의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댄서들이 연이어 각종 기업행사와 지역축제 등에 초청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댄스 팀들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이는 곧 대한민국 전역 방송미디어의 주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 가게 되었다. 2001년은 한국의 댄서들이 세계무대로 그 등장을 알린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서 예술을 말하다-나경식 교수의 칼럼은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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