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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예술계열

[시사뉴스투데이 보도] 박 리디아 교수 모델과 연기자, 그리고 후학양성까지 그녀의 인생은 '현재진행형'
201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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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광고계퀸에서 진정한 배우로,‘ 천직’ 교수로 변신한 ‘돌 꽃 같은 여자’박리디아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말을 되새겨보자. 어떤 의미에서의 아름답다 일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는 걸까. 내재된 아름다움은 보이는 아름다움에 비하지 못하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자란 인동초의 내공이 화려한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능가한다. 삶의 아름다움이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가치가 있기에 가능하다. 90년대 광고계 퀸, 당대의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던 박 리디아를 만나는 날은 마침 그녀가 현재 후학을 가르치는 서울호서예술 전문학교의 축제날 이었다. 젊음의 축제가 한창인 곳에 학생들 틈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아름답고 생기가 넘쳐나는 그녀를 만나 따사로운 가을날 꽃향기 같은 인터뷰를 청해 보았다.
박리디아는 누구인가?
박리디아는 우리가 광고를 통해 몇 번을 보았는지 세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익숙한 모델이었다. 모델라인 17기로 데뷔를 한 그녀는 90년도 대한항공 CF로 광고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삼성전자, LG 화학의 전속모델이었으며, 국내 잡지와 패션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석권하며 자타가 인정하는 톱모델의반열에올랐다.‘ 여자는한달의한번씩마술에 걸린다.'라는 유명한 카피문구의 광고모델 주인공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며연극을 접하게 된 후 대학교 1학년 때 프로극단(민중)으로 입단하여 故김주승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발탁이 되면서 연극계에서도 떠오르는 신데렐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방송으로 모델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매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하는,지금으로말하면만능엔터테이너로서의선두주자였던것이다.그녀의 끼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모친은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도 나오는 벌교의 여관집 막내딸로 세상물정 모르고 귀하게만 자라셨고 아버지는 일본태생의 7남매 장남으로 역시 한국물정 전혀 모르시던 분이셨다. 당시두분모두 초등학교 선생님 이셨는데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다. 보니 이목을 피해 학교를 포기하시고 서울로 상경을 하셨다. 그녀가 중3이 되던 그 해 부모님이‘천직’이신 교사로 다시 복귀하기 까지 지금의 그녀를 보면 상상이 안갈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톱 모델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칭송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던 스물일곱 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게만 느껴졌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연기공부를 위해,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것들을배우고자하는욕구가더컸다.
 
유학생활과 복귀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일 년 언어과정을 밟고 국립연극원 기티스 에 뮤지컬 연출 전공으로 입학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뮤지컬은매우 전통적 오페라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하던 것과는사뭇 거리가 있었기에,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그녀는 다시 짐을 싸서 미국 뉴욕으로 갔다. 미국으로 옮겨간 두어 달쯤 지나 IMF를 맞게 된다. 부모님 도움 없이 자립적으로 떠난 유학길에 생각지도 않 은 변수가 생긴 것이다. 환율이 뛰면서 돈의 가치가 1/3으로 줄어드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아니라 포기래요.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포기 안 해요." 오히려 유학 시절을 생각하며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모델 계는 그 세대교체가 빠르다. 박리디아가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그자리는 후배들로 채워진지 오래였다. "모델들의 몸값은 감가상각이 있어요. 다른 직업은 연륜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대한 대가를 더해주지만 모델은 그 반대죠. 일의 성격상 그래요. 기억도 못하더라고요.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빨리 인정하고 뒤처지지 않게개발하는자만이살아남는법이니까요." 모델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가? ‘모델’의 정의를 묻는 말에“모델이 마네킹이었던 시대 는 지났어요. 단순한 기능인 이 아닌 그 자체의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가진 전문인, 나아가 예술가죠.”라며 지금의시대가 요구하는 직업의 세계에 당당한 직업인으로서 모델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모델들 스스로가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도록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가꾸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외적 아름다움이 내면으로부터 나온 다는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안과밖을채우려노력해야한다고강조한다.“ 좋은스승을찾아 나서라 예요." 좋은 스승은 가만히 있어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삶을 살아본 스승들을 좇아가면 우리에게 없는 삶의 향기가 있다고 그녀는 예찬한다. "노력해서얻어지는 것이 아니면 차라리 갖지 마라"라고 단호히 말하는 그녀
또한 어느덧 누군가에게 롤 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스승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그녀는 아직 '현재 진행형'
쓰라린 계절을 지나며 더욱 단단해진 그녀는 현재 본교의 교수부장으로 후학을 위해 연기와 병행하여 미래의 꿈나무를 키우고 있다. 또 아시아모델협회에서 수석부회장으로 후배모델들을 위한 재교육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극단 연극사랑 대표로공연제작 활동도 하고 있다. 최근엔 다큐 내레이션에도 도전 했어요. 늘 일고프죠(웃음)." 그녀는 '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배우도 천직, 교수도 천직이라고 말하는 박리디아에게 이미 '결과'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직 달려가는 '과정'만이있을 뿐. 그녀는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축제의 장소를 나오는 길에 생각해보았다. 박리디아라는 사람은 무슨 꽃에 비유할 수 있을까? 화려한 외모 뒤에 그저 정직하게 오직 끈기와 열정으로 세상과 만나는 그녀는 바위를 비집고 피어나는돌꽃과너무도닮았다. 취재_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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